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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칼럼]청소년 인권교육이 무색한 현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가지는 기본 권리다. 즉, 천부인권(天賦人權)이다. 또 피부색이나 직업, 성별, 신체적 특징 등에 따라 부당하게 대우받거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일선 초‧중‧고등학교에선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존중 등에 관한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우리 사회는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금지하고 있다. 대신 여성문제, 노동문제, 빈곤문제, 소수민족문제, 장애인문제, 국제난민문제, 환경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인권존중의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노력이 있음에도 법무부 차관이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 초기 정착 지원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는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10분이 넘는 브리핑 시간 내내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차관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 직원의 사진이 문제가 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지금이 조선시대냐’, ‘갑질이다’, ‘대통령도 자기 우산은 자기가 든다’라는 등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취재한 많은 언론들은 “황제의전”이라고 비판했고, 기사 내용과 사진을 본 독자들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행태라고 분개했다. 또 다른 독자는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우산을 들고 차량으로 이동했다며 차관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런 비판 속에 결국 차관은 “엄숙하고 효율적인 브리핑이 이루어지도록 저희 직원이 몸을 사리지 않고 진력을 다하는 그 숨은 노력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국민 여러분께 고개를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 자신부터 제 주위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받도록 거듭나겠다”고 했다. 누리꾼들은 우산을 직접 들고 행사에 참석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의 사진과 함께 비판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자신의 구두를 직접 닦았다고 한다. 이를 만류하는 비서관에게 “자신의 구두를 닦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라며 “세상에 천한 일이란 없네. 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국제 연합(UN)은 '세계 인권 선언'을 선포(1948년)하면서 ‘인권’을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권리로 채택했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고 정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함을 세계 인권 선언은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는 말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함을 뜻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를 기대하며, 청소년들에게 인권존중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권교육에 반하는 사회 현상들을 접할 때면 민주시민으로서의 가치관을 확립시키려는 학교에서의 청소년 인권교육이 무색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황제 우산’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의 의견들도 있다. 하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회 지도층의 사람들은 국민들로부터 비난 받지 않는 공정사회를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는 모범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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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8-30
  • [이현환 칼럼]삼인성호(三人成虎)』 격(格) 『네거티브(Negative)』 안 돼
    위(魏)나라의 대신 방공(龐恭)이 태자와 함께 조(趙)나라에 인질로 끌려갈 때의 이야기다. 방공이 왕에게 물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두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왕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세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또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라고 왕이 대답했다. 그러자 방공이 말했다.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도, 여러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 이 대화는 ‘세 사람이 호랑이를 만들어낸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유래다.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예나 지금이나 선거에 임하는 사람들은 『네거티브(Negative)』 전략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네거티브는 좌우 명암 관계가 피사체와 반대인 사진의 화상을 뜻한다. 그러나 선거전(選擧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네거티브는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폭로하여 자신이 이득을 얻는 것을 말한다.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질 수 있는 것도, 우선은 상대방의 비리라 규정짓고 공격하는 것이다. 일부 후보자들의 이런 행태는 과거 선거에 임했던 자들의 네거티브 전략이 나름 효과가 있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인성호(三人成虎)』처럼 결국에는 거짓으로 밝혀질 것도 여러 번 듣게 되면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는 ‘페어플레이(fair play)가 없는 스포츠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투철한 정신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드라마틱한 미담이 되고 있다. 결승에서 아쉬운 패배를 했음에도 승자의 손을 들어주며 축하해 주고, 펜싱경기에서 공격을 시도하다 다리를 삐끗한 선수를 향해 공격을 멈추고 장비를 재정비하게 해준 우리 선수들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체육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선거에 임하는 후보자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아니겠는가 싶다. 네거티브 전략으로 승부를 가리려 하기보다는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정해진 법대로 정정당당한 승리를 이끌어 내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필요하다.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미래 사회의 주역인 우리 청소년들에게 모범으로 보여줘야 할 선거문화를 정착하자. 네거티브로 서로 물고 뜯어보았자 결국은 둘 다 멸망하는 길로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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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8-12
  • [이현환 칼럼]자녀교육, 『틀림이 아닌 다름』 인정해야
    8살 난 이샨은 상상력이 남 다른 아이다. 수업시간에 배우는 글자들이 물고기 되어 헤엄치고, 알파벳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상상을 하는 게 일상이다. 이런 엉뚱한 생각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선생님들로부터는 모든 일에 가능성이 없는 아이로 취급당했다. 아버지 역시 무엇에든 1등하는 형과 비교하며, 엉뚱한 행동을 하는 이샨을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꾸짖기만 했다. 그러다가 이샨의 엉뚱한 행동을 고쳐보려고 규율이 엄격한 기숙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하지만, 여기서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특이한 행동 때문에 선생님들에게서 꾸중을 당하고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학교에 니쿰브 선생님이 미술 교사로 부임했다. 니쿰브 선생님은 이샨의 행동을 관찰하다가 다른 선생님들은 물론 그의 부모도 발견하지 못한 난독증이 이샨에게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다른 선생님들이 문제아로 취급했던 이샨에게서 그림그리기와 만들기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도 발견했다. 니쿰브 선생님은 이샨의 이런 장애를 가능성으로 바꾸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기 위해 열정을 다했다. 엉뚱하다 여겨지는 이샨의 상상력을 구속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격려하며 도왔다. 소외당하는 한 아이에 대한 니쿰브 선생님의 관심과 노력은 이샨으로 하여금 예전보다 훨씬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갖게 했다. 난독증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글도 잘 읽을 수 있게 됐고, 타고난 소질을 살려 교내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1등도 했다. 이샨의 아버지는 니쿰브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이샨에 대한 자신의 교육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샨의 이야기는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와 부모의 역할(교육방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우는 인도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아이들의 개성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말해 주고 있다. 니쿰브 선생님의 교육적 마인드를 통해 아이들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데는 선생님들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엉뚱하다는 이유로 무시한 적은 없었는가. 모가 난 돌은 모가 나서 쓸모가 있고, 둥근 돌은 둥글어서 쓸모가 있다. 아이들의 자그마한 일탈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다」는 생각으로 아이의 특별함을 존중해야 한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니쿰브 선생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이의 장점을 살려 당당한 걸음으로 미래의 삶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교사이고 부모여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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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7-26
  • [이현환 칼럼]준법(遵法), 민주시민의 길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解放)된 날이다. 그로부터 3년 후 1948년 총선거를 실시해 초대 국회의원을 뽑았다. 여기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헌법(憲法)을 만들고, 자주독립(自主獨立)의 민주국가(民主國家)임을 세계만방에 공포(公布)했다. 이를 기념(記念)하는 날이 바로 ‘제헌절(制憲節)’이다. 한 초등학교에선 학급별로 제헌절 계기(契機)교육을 실시했다. 제헌절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고 학교 규칙으로부터 시작하여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교육에 참여한 한 아이는 “법(法)은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헌법(憲法)은 국가의 기본 법칙이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정치 조직 구성과 정치 작용 원칙을 세우며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거나 형성하는 최고의 규범이다. 필자의 초등학교 『학교생활통지표』 ‘행동발달상황’란에는 ‘준법성(遵法性)’을 비롯한 15개 항목이 있었다. ‘준법정신(遵法精神)’은 법을 지켜나가는 정신이다. 그러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준법성을 고양(高揚)시키려는 교육적 의도(意圖)였다. 사회의 모든 법과 규범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과 사회 정의를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때문에 공공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법과 질서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럼에도 꼭 지켜져야 할 법을 어긴 사람들이 훗날엔 사실로 밝혀질 자신의 범법(犯法) 행위를 인정하기보다는 우선 당장 모면해 보려는 생각에서 자기 합리화(合理化)에 급급해 하는 모습은 청소년들이 실천하려는 준법정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 국가와 국민이 민주국가로 발전하고,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른이나 아이를 막론하고 준법교육(遵法敎育)이 필요하다. 올해로 일흔 세 번째 제헌절을 맞으면서 우리의 청소년(靑少年)들이 준법성(遵法性)이 강한 건강한 민주시민(民主市民)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旣成世代)들은 법(法) 준수(遵守) 모범(模範)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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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7-17
  • [이현환 칼럼]노인(老人), 『지혜(智慧)의 보고(寶庫)』로 존중해야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 중에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것들이 많다. 그 중에 젊은이들이 노인을 폭행하거나 욕설하는 장면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부모가 도대체 어떻게 가르쳤기에 저러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전철 안에서 중학생들이 노인을 폭행하고, 노약자석에서 어른에게 대드는 장면은 모두를 경악시켰다. 남학생에게 팔꿈치로 맞고, 목이 졸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노인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바른 자세로 앉으라”는 충고를 던졌다가 세상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봉변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이 중학생들에게 노인복지법 위반 혐의(노인학대죄)를 적용해 법원 소년부로 송치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쪽에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라는 뜻으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했는데 어쩌다 요지경이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2006년 국제연합(UN)이 ‘세계 노인 학대 인식의 날’을 제정한 걸 보면 노인 학대에 대한 심각성은 우리나라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의 노인 학대 증가 원인을 급속한 고령화 현상, 노인 인구의 증가,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부양기능이 약화에서 찾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사회구조가 어떻게 변하든 그것이 노인 학대의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노인들은 존경받을 분들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노인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된 우리나라가 6.25전쟁으로 폐허된 자리에서 보릿고개의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새마을 운동을 통해 오늘의 부강한 대한민국을 일궈낸 주역들이다. 뿐만 아니라 지식(知識)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하는 『지혜(智慧)의 보고(寶庫)』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도서관(圖書館)이 배움과 정보를 얻는 지식의 창고라면, 노인들은 그분들의 삶 속에 녹아난 지혜와 경륜을 지니고 있는 보고(寶庫)라는 의미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똑같이 생긴 말 두 마리를 두고 어미 말과 새끼 말을 구별하는 방법, 네모난 나무토막의 위와 아래를 가려내는 방법, 재로 새끼를 꼬는 방법 등의 답을 노부모로부터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재가 경륜을 이기지 못하고 경륜이 연륜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나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는 그리스 격언이 생각나는 이야기다. 가정은 물론 국가나 사회는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배우고 활용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다는 격언이 아닐까. 어른(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이 잔소리로 들리는 세상이 되었지만,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노인이 될 청소년들에게 조언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 경험을 노인들의 지혜에서 배우고, 노인들을 내 삶을 윤택케 해 줄 『지혜(智慧)의 보고(寶庫)』로 존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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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7-09
  • [이현환 칼럼]자녀에게 관람(觀覽) 예절 가르쳐야
    지난 3월 국내 한 전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철없는 20대 남녀가 유명 그래피티(graffiti) 작가의 벽화에 낙서해 작품을 망친 황당한 사건이다. 전시 기획사는 경찰에 이들 남녀를 신고했다가 나중에 취하했다. 이들 남녀가 “벽에 낙서가 돼 있고, 붓과 페인트가 있다 보니 낙서를 해도 되는 줄 알았다”고 한 말을 믿고 작품 훼손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판단으로 신고를 취소한 것이다. 지난 5월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국 거장 화백이 그린 억대의 예술작품을 어린 아이들이 훼손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 화백은 너그럽게도 “아무 문제도 삼지 말라”며 용서했다. 이 사건의 과정은 이러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작품 전시관에 들어온 두 아이는 작품이 신기한 듯 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작품을 밟고 올라서는 것은 물론 그 위에 눕기까지 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행동은 가관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을 말리기보다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 옆에는 ‘눈으로만 감상해주세요’라는 주의 문구가 적혀있었고, ‘어린이가 올바른 관람을 할 수 있게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라는 안내문도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이들 부자의 눈엔 이 문구가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이들 부자의 무도한 행동에 작품은 심하게 훼손됐다. 미술관은 화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화백은 화내기는커녕 “아무 문제도 삼지 말라”며 미술관을 다독였다. 그러면서 화백은 “애들이 뭘 압니까, 어른이 조심해야지. 그래서 더 이상 얘기할 것 없다”며 “나도 자녀와 손자들이 있기에 용서하고 싶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30~40년 전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 다오’라는 CF 광고가 있었다. 개구쟁이는 사전적 의미로 ‘철없이 짓궂은 장난을 즐기는 아이‘를 뜻한다. 장난이나 말썽을 피우는 것이 용납되는 아이를 일컫는 애칭(?)이기도 하다. 철없는 아이들의 조그만 잘못을 덮어주고 용인해 주는 어른들의 넓은 아량이 개구쟁이라는 단어에 녹아 있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좋든, 나쁘든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의 일탈(逸脫)된 행동을 “그냥 둬~, 아이니까 그러지~”라고 면죄부를 주면 이 아이는 남을 배려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피해를 주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혼신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훼손했음에도 너그러이 용서한 기획사와 화백의 아량은 좋은 미덕임에 분명하다. 철없는 아이들의 행동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부추기듯 사진까지 찍는 아버지의 행동은 문제가 있다. 아이들의 행동을 만류하거나 바른 감상태도를 교육하기는커녕 그 모습을 사진 찍어주며 즐기고, “아이들이 작품을 만지면 안 되는지 몰랐던 것 같다“고 변명하는 아버지는 되지 말아야지 않겠는가.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등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에티켓을 아이에게 교육해야 할 책임은 부모와 어른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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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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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칼럼]『일일선실천국민운동』, 전국 확산을 기대하며
    『(사)일일선실천국민운동본부』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생각으로 보람 있는 일을 마음에 담고 하루 한 번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자’며 지난 2010년 전북에서 출범한 단체다. 2015년 3월엔 익산지역 16개 초등학교에 3만여 권의 ‘일일선 기록장’을 보급하면서 익산시지부(초대지부장 곽인숙, 국제로타리3670지구 총재)가 설립됐고, 모범지구로 평가받는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일일선실천국민운동본부』 이상익 이사장은 “초·중·고 12년 기간 중 6년의 초등학교는 인성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이며, 참 인성이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고 자칫 실패한 성공이 될 수 있”고 강조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은 인성교육의 중요한 시기를 말하고 있다. 『(사)일일선실천국민운동본부』는 떡잎부터 잘 키워야 할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일일선 기록장 무료 보급’으로 날마다 자기가 실천한 착한 일을 기록하게 하는 한편 어린이들의 미래를 일깨워 주는 ‘인성교육 특강’과 일일선 실천 동기 부여를 위한 ‘일일선 실천학교 지정’, 표현력과 사고력 증진을 위한 ‘어린이 논술대회’, ‘이달의 자랑스러운 청소년 선정 표창’, 매년 ‘모범어린이 표창 ’, ‘장학금 지급’ 등 알차게 추진하고 있다. 2018년엔 ‘전라북도 어린이 인성의 날’을 제정하고, 2020년 12월엔 창립 10주년 기념사업으로 어린이 인성교육용 ‘인성보감’ 5,000권을 전라북도교육청에 기증하기도 했다. 『(사)일일선실천국민운동본부』는 ‘바로 서는 질서’, ‘아름다운 배려’, 따뜻한 나눔‘을 3대 실천 덕목으로 한다. 청소년들이 아름다운 인성을 지닌 미래사회의 지도자로, 국가 발전을 위한 인재로 성장하는데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가르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만 배려하는 이기적인 일들이 빈번한 우리 사회 현상을 보면서 질서, 배려, 나눔에 대한 청소년 교육은 절실하다. 일일선 3대 실천 덕목 중 질서와 나눔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20세기의 존경받는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비폭력운동을 실천한 사람이다. 간디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간디는 어느 날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신히 올라타게 됐다. 그 순간 급하게 뛰는 바람에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땅에 떨어졌다. 기차는 이미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그때 간디는 얼른 다른 한쪽 신발을 벗어 들어 땅에 떨어져 있는 신발을 향해 힘껏 던졌다. 간디의 행동을 이상히 여긴 친구가 그 까닭을 물었다. 간디는 "누군가 저 신발을 줍는다면 두 쪽이 다 있어야 신을 수 있을게 아닌가"라고 답했다. 훌륭하다고 존경받는 사람들의 첫째 조건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머리가 숙여진다. 이상익 이사장은 “일일선 실천운동은 한 골짜기를 적시고, 넓은 대지를 적시고,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면서 모두가 행복한 그날까지 흐르고 또 흘러 우리 모두가 행복할 것을 기대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북에서 태동한 ‘일일선실천국민운동’이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을 위해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잘못된 현상들을 답습하기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간디의 마음을 소유한 자들로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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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1-21
  • [이현환 칼럼]왕자가 된 거지의 삶, 생각을 바꿔야
    신축년 새해가 밝은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스무날이다. 새해라고 지난해와 특별히 달라진 게 있겠는가마는 새해를 맞으면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인지상정인가보다. 올해 이것만은 꼭 해보자며 새로운 설계를 하고 실천하리라 다짐한다. 또 작년보다 좀 더 잘해보자며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기곤 한다. 올해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은 되지 말아야 한다고 굳게 마음도 먹는다. 과학적인 합리주의적 사고가 일상생활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오늘날에도 정초가 되면 한 해의 길흉화복을 점치기 위해 ‘사주(四柱)’를 보는 이들이 있다. 중국 당나라 후기에 천문, 지리, 주역, 기문, 둔갑, 명리에 통달한 마의선사(麻衣禪師)는 “사주(四柱)는 신상(身相)보다 못하고, 신상(身相)은 심상(心相)보다 못하다”고 했다. 이는 사주(四柱)가 삶을 바꾸는 게 아니라, 마음 씀씀이가 생각을 변화시켜 더 나은 삶을 가꾸어낸다는 의미다. ‘착한 심상(心相)은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바꾼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어느 날 임금님이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궁궐 밖 세상을 돌아봤다. 시골길을 가다가 추운 겨울, 다리 밑에 있는 웅크리고 있는 불쌍한 거지 소년을 보았다. 임금님은 그 소년을 궁궐로 데려와 왕자로 삼았다. 누더기 된 거지 옷을 벗기고, 금으로 장식한 왕자의 옷으로 갈아 입혔다. 왕자가 된 거지 소년은 따뜻한 잠자리에서 잘 수 있었고, 예전처럼 구걸하지 않고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이제 이 소년은 더 이상 거지 신분이 아닌 왕자의 신분이었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궁궐의 모든 환경이 너무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했다. 궁궐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이 되자 소년은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왕자님, 어디 가시렵니까?” 시중 드는 신하의 물음에 “저 큰 다리 밑에 가서 세수하고 오려고요”라고 말했다. 소년은 왕자가 되었음에도 다리 밑에서 세수하던 거지의 신분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왕자가 되어서도 거지의 삶에 익숙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왕자로 살기 위해서는 거지일 때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고 왕자의 삶을 익히는 노력이 있어야 했는데 말이다. 미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뉴욕 맨해튼 할렘가의 노숙자 한 사람에게 목욕을 시키고 새 옷과 주거지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는 전날과 다름없이 술에 취해 있었고, 옷은 시궁창에 빠졌다 나온 상태로 골목에서 노숙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새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지만 노숙자는 변하지 않았다. 외형의 변화보다 마음의 변화가 중요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은 성공과 실패라는 큰 차이를 가져온다. 새해가 되어 아무리 다짐에 다짐을 거듭한다 해도 과거의 잘못된 습관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생각의 전환(轉換)이 없다면 다짐 또한 무의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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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1-18
  • [이현환 칼럼]새해엔 도움 나누는 복된 만남을
    유럽 국가에 ‘착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이 있다. 어려움에 처해 구조가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구조해야 한다는 의무를 법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일반인들이 적극적으로 구호활동에 참여하는 활동을 유도하기 위한 법이다. 이 법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율법사의 물음에 대한 예수의 답에서 비롯한다. 예수는 비유를 들어 답했다. 길을 가던 한 나그네가 강도를 만나 물건을 다 빼앗기고 죽게 된 지경에서 길가에 버려졌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 그 옆을 지나갔지만 모두 다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런데 강도 만난 나그네의 상처를 싸매주고 자비(自費)를 들여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사회의 배척과 증오의 대상인 사마리아인이었다. 예수는 최선을 다해 강도 만난 나그네를 도운 사마리아인이 이 나그네의 참 이웃이라고 말했다. 위인전에 나올 법한 일화도 소개한다. 한 소년이 호수에 빠져 죽게 된 상황에서, 호숫가를 지나던 시골 소년이 용감하게 호수로 뛰어들어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해냈다. 물에 빠졌던 소년이 깨어난 후 자기를 구해준 시골 소년에게 “네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라”고 했다. 시골소년은 “나의 꿈은 의사인데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내 소원은 의학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에 빠졌던 소년은 자기 아버지에게 이 시골소년을 공부하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고 그의 아버지는 의과대학에 입학시켜 공부하게 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의사가 된 이 시골소년은 1928년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194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알렉산더 플레밍이다. 그리고 시골 소년에 의해 생명을 건진 소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다. 이 둘은 서로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 된다. 수상이 된 처칠은 중동 지방 순시 중 폐렴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며 심한 고통 속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때 알렉산더 플레밍은 자기가 발견한 페니실린으로 처칠을 살려냈다. 강도 만났던 사람은 사마리아인을 만난 게 복이었다. 플레밍과 처칠의 만남 역시 서로에게 복이 되는 만남이었다. 남을 진심으로 돕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돕는 것임을 알게 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친구로, 연인으로, 어느 때는 상호 비즈니스 관계 등으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새해엔 도움과 나누는 복된 만남이 많아지길 소원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노력이 선행되면 서로에게 도움 되고 행복한 만남이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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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6
  • [이현환 칼럼]『아시타비((我是他非)』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아들, 딸 고이 길러 결혼시킨 부모가 어느 날 딸네 집에 갔다. 딸은 오랜만에 온 친정부모 곁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고, 사위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했다. 친정어머니는 생각했다. ‘우리 딸 시집 참 잘 갔네. 부엌일까지 다해주는 남편 사랑받고 사는 게 참 좋다’고 말이다. 다음날엔 아들 집에 갔다. 아들은 부엌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순간 울화가 치밀어 며느리에게 화를 냈다.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 귀하게 키운 아들인데 궂은 부엌일이나 하고 있다니….’ 대한민국의 여러 지식인들은 연말이 되면 지난 한 해의 사회상을 함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정하곤 한다. 깊고 건강한 정론지라 자평하는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아시타비(我是他非)』로 정했다. 아시타비는 똑같은 상황임에도 이중 잣대로 바라보거나, 남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경우를 뜻한다. 즉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의미다. 요즘 속어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겠다. 한 교수는 우리 사회 현상에 대해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서로를 상스럽게 비난하고 헐뜯는 소모적 싸움만 무성할 뿐 협업해서 건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며 아시타비 추천 이유를 밝혔다. 다른 교수들 역시 어느 사회든 나름의 갈등이 있지만, 올해 코로나19 확산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서도 정치와 사회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아시타비가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사위가 부엌일 하는 것은 괜찮고, 아들이 부엌일 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어머니의 생각이 바로 아시타비다. 아시타비는 편견에서 기인한다. 맹자는 ‘자기중심의 시각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라’는 뜻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말했다. 또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를 돌아보라(治人不治反其智)’고 했다. 아시타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다. 조선시대 최고의 재상이라 일컫는 황희는 18년간 정승의 자리를 지내면서 태종, 세종, 문종 세 임금을 보좌한 사람이다. 그는 상생하는 정치, 빈부귀천을 구별하지 않는 정치, 상대방 입장을 배려하는 정치, 인간 가치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정치로 임금의 신뢰와 아랫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황희는 아시타비보다는 배려와 공존을 바탕으로 한 역지사지의 정치를 실천한 사람이다. 역지사지는 편견이 지배하는 사회의 갈등과 대립과 분열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접하면서 필자는 아시타비(我是他非)로 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봤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지난 1년이 아시타비(我是他非)의 삶이었다면, 새해엔 역지사지의 삶이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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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30
  • [이현환 칼럼]1914년 1차 세계대전 때의 '성탄절'이 주는 교훈
    제1차 세계대전이 치열했던 1914년 12월 24일 밤은 살을 에는 추운 성탄 전야였다. 당시 벨기에 이프로 전장(戰場)에서는 독일군과 영국군이 불과 몇 미터 사이를 두고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추위에 떨며 참호 속에서 적의 공격을 대비하던 그때, 영국군 병사들에게 귀에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독일어로 들려온 노래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왕이 나셨도다.” 영국군 병사들도 잘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 캐롤이었다. 그 순간 영국군은 독일군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때 한 독일 병사가 자그마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 참호 밖으로 올라왔다. 뒤이어 양측의 수많은 병사들이 비무장 상태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 서로에게로 다가갔다. 적으로 대치하는 곳에서 마주친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언어는 달랐어도 “메리 크리스마스”하며 크리스마스 선물도 교환했다. 양측 군 지휘관들은 전사자들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휴전을 합의했다. 이들은 전투식량을 나누어 먹고 기념사진을 함께 찍으며 살아남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이날의 자발적인 휴전은 독일군과 영국군, 벨기에군, 프랑스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던 서부전선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적이지만, 이날만큼은 크리스마스 정신으로 함께했다. 크리스마스 정신은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다. 이웃사랑과 평화와 화해를 선포한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보수와 진보, 민족 간의 갈등과 대립, 경제적 빈부의 격차와 정치적 분쟁 등으로 나누어진 사회의 양극화다. 상대방을 이해하기보다는 자기주장만 강한 지도자들을 보노라면 참으로 안타깝다. 이제는 크리스마스의 정신을 회복하여 진정한 평화와 화해의 지도자로 청소년들의 표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년 예수그리스도의 성탄일에는 1914년 이프로 전장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정신이 우리 모두에게 되살려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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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5
  • [이현환 칼럼]]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청소년! NG를 통해 발전한다.
    <제3의 물결>은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1980년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선언하며 발간한 책이다. 이 책은 수렵채취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변화한 것을 제1의 물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변화를 제2의 물결,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의 변화를 제3의 물결로 구분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로봇과 인공지능(AI) 발달에 의한 ‘제4의 물결’이 찾아올 것이라 예언했다. 책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1980년대 후반 산업용 로봇의 등장으로 인공지능 기계의 발달이 가속화돼 오늘에 이르렀다. 인공지능 기계는 인류를 편리하게 하는 장점도 많지만, 문제도 상당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이 이미 인공지능 기계와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 바로 그거다. 현재 스코어는 인공지능에 인간이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2016년 이세돌과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승리한 것은 큰 충격이었다. 인공지능 기계가 사람의 명령만 기억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여 활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음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세돌은 알파고에게 패한 후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때를 같이하여 53개의 손가락으로 100곡을 연주할 수 있는 로봇 피아노 연주자 ‘테오 트로니코’와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의 연주 대결에서도 인간이 패했다. 하지만 음악평론가들은 “로봇연주는 실수 없이 정확했지만, 감정이 없는 기계 연주는 음악이 아니다”고 했다. 기계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오로지 정확성으로 그 가치가 판단된다. 하지만 인간은 무한한 상상력과 도전, 실패를 거듭하는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한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는 짧은 대사 한마디를 59번이나 ‘NG(no good)’를 냈다. 더 완벽한 작품을 추구하는 감독은 배우의 간단한 대사 한 마디에도 수많은 NG를 요구한다. 만 번의 실패를 거듭한 에디슨은 자기 경험을 통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아직 배울 게 많은 청소년은 실수와 실패, 수많은 NG를 통해 발전해 나가는 존재다. 그들은 실수를 통해 실수를 알고, 올바른 생각을 만들어 간다. 그러기에 청소년의 실수는 ‘잘못’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성장통’으로 보아야 한다. 그들이 용기백배(勇氣百倍)한 미래사회의 주인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작은 실수를 탓하기보다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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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17
  • [이현환 칼럼]행복한 삶, 좋아하는 일 하는 것
    1986년 온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 한 마디 유서를 남기고 꽃다운 학생이 스스로 세상을 던지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후 이 학생이 남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글은 입시지옥을 지나는 대한민국 전체 학생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성적이 좋건 나쁘건 부모가 실망할까 봐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한 학생들의 속 깊은 절규이기도 했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학생들의 일상어가 됐고, 소설과 노래,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맞다. 정답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다. 청소년기를 지나 어느덧 자녀를 둔 성인들도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다. 하지만 현실과 생각은 괴리가 억만년만큼 차이가 크다. 1986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쓴 학생과 같은 시대를 겪어온 성인들도 학부모가 되어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 기성세대와 똑같은 현실의 길을 걷고 있는 게 다반사다. 어떻게라도 자녀의 성적을 높여 좋은 대학에 보내고,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게 되면 삶이 풍족해지고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 게 부모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은 "공부를 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란 말을 매일같이 듣고 있다. 청소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하는 것밖에 없다. 공부라는 답만 있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OECD국가 중 꼴찌 수준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좋다.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어른들의 말을 믿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면 과연 행복해질까? 미국 한 연구소가 20년간 1,500명을 대상으로 부를 축적하는 각자의 직업 선택 방식을 조사했다. 조사 대상자 중 101명이 억만장자가 됐고, 그 중에 1명을 제외한 100명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국민 요리사 백종원은 2017년 모 방송사 연예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이 자리에 섰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머리가 뛰어난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일을 즐기며 재미를 느끼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얼마 전 수능이 끝났다. 학생 대부분 수능 결과에 따라 진로 결정을 고민할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성적에 앞서 자신의 행복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바로 그것이다. 청소년들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즐기면서 노력해 보았으면 좋겠다. 퇴직한 교육자로서, 무엇보다 성인이 된 자식을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 진실로 전하는 당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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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0-12-10
  • [이현환 칼럼]편안한 자리보다 도움이 필요한 자리
    의사이자 음악가,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1952년 노벨평화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인류의 형제애’를 위해 노력한 공로가 수상의 영광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잠시 경유지인 프랑스 파리에 머물자 취재기자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사실 슈바이처 박사는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伯爵)’ 칭호를 받은 귀족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기자들은 슈바이처 박사가 당연히 특등실에 탔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다. 기자들이 특등실을 구석구석 살폈지만, 그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들은 일등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도 없었다. 다시 이등칸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마저도 그는 없었다. 슈바이처 박사를 찾지 못한 대부분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아직 삼등칸이 남아 있었지만, 기자들은 귀족 신분인 슈바이처 박사가 설마 가난한 사람들이나 타는 곳에 탔겠나 싶어 아예 삼등칸은 찾지도 않고 취재를 포기한 채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영국 기자 한 명은 행동이 달랐다. 기차에 남은 기자는 혹시나 하고 삼등칸을 살피기 시작했다. 역한 냄새로 가득한 삼등칸 구석에서 빈민들을 진찰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그렇게 찾아 헤매던 슈바이처 박사였다. 인터뷰를 시작한 기자의 첫 질문은 이랬다. “선생님은 왜 3등 칸에 타셨습니까?” “이 기차에는 4등 칸이 없어서요.” 슈바이처 박사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박사님 같은 분이 왜 특등실에 계시지 않고 이렇게 불편한 곳에 계십니까?” “저는 편안한 자리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이 필요한 자리를 찾아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지체 없이 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는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그의 삶 중 가장 중요한 3가지를 포기해야만 했다. 심취했던 바흐 음악과 명성을 떨칠 대학 교수직, 그리고 풍요롭고 안락한 자신의 삶이었다. 그는 아프리카에 병원을 설립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병을 고쳐주고, 신학자로서 그들의 영적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했다. 슈바이처 박사는 자신의 안일한 삶보다는 어려운 이웃과 기꺼이 함께하는 삶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 여겼다. 이러한 자신의 삶의 철학을 고집스럽게 실천한 그는 영원한 ‘아프리카의 성자’로 남았다. “저는 편안한 자리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이 필요한 자리를 찾아다닙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슈바이처 박사의 이 말은 모든 이들을 감동시키는 명언으로 자리 잡았다. 자신의 높은 신분을 과감히 내려놓고, 낮은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준 슈바이처 박사처럼 편안함보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그런 삶을 모두가 꿈꾼다면 세상은 얼마나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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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0-12-03
  • [이현환 칼럼]공감적 대화, 경청으로부터
    더위가 기승을 부린 한여름날, 기관 특강을 위해 강사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직원이 가까이와 말을 건넸다. “무슨 차를 드릴까요?” “커피만 아니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직원이 가져온 차는 커피였다. “커피가 아니라고 했는데요”라고 말하려다 직원이 미안해 할까봐 그냥 받아 마셨다. 그러면서 내가 말을 잘못했나 싶어 몇 번이고 되뇌어 보았다. 차를 주문받는 직원은 ‘손님이 무슨 차를 주문할까’라는 생각에 “커피”라는 말만 기억했던 것 같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자기가 듣고자 하는 부분만을 듣게 되면 오해가 생긴다. 칭기즈칸은 “배운 게 없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며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 지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대화의 기본은 경청이다. 경청의 구체적인 방법은 상대방의 말을 온몸으로 듣는 것이다. 등교하려고 집을 나서는 아이가 “엄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어떤 엄마는 주방에서 설거지하며 “응, 알았어, 잘 다녀와~”라고 별생각 없이 대답한다. 이런 성의 없는 엄마의 대답은 아이로 하여금 입으로만 하는 형식적인 인사를 하게 만든다. 다른 엄마는 인사하는 아이를 현관문까지 배웅하면서 아이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안아준다. 그리고 “학교 잘 다녀와~”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이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온몸에 안고 행복한 마음으로 등교하게 된다. 엄마가 온몸으로 아이의 인사를 받고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다. “말하기는 한 번 하고 듣기는 두 번 하고 공감 표현은 세 번 하라”는 말이 있다. 이는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고 공감해 주라는 의미다. “커피만 아니면 됩니다”는 말을 끝까지 듣는 경청이 있었다면 커피를 가져다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공감은 너(you)와 나(me)가 만드는 우리(we)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영역이다. 이 영역의 크기에 따라 공감 능력의 차가 생긴다. 공감 영역이 클수록 오해와 불신은 적어지고 이해와 나눔과 함께함은 커지게 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에 대해 공감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공감 영역을 크게 하는 공감적 대화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경청에서 출발한다는데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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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0-11-27
  • [이현환 칼럼]나쁜 꼬리표 떼주는 사람 되자
    혼자서 힘들게 살아가는 엄마에게 행실이 바르지 못한 아들이 있었다. 이런 아들은 ‘몹쓸 아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이를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엄마는 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네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나쁜 평을 받는 행동했을 때 네 손으로 이 나무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도록 하자.” 아들은 엄마와의 약속에 따라 자신의 잘못이 있을 때마다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았다. 얼마 가지 않아 기둥에는 더 이상 못 박을 곳이 없게 됐다. 기둥에 가득 박힌 못을 본 아들은 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며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는 “네가 네 죄를 깨닫고 뉘우쳤다면 너는 그것으로 용서를 받은 것이다. 이제는 네가 착한 일을 할 때마다 저 기둥의 못을 한 개씩 빼도록 하자”고 다시 제안했다. 아들은 그날부터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고, 얼마지 않아 기둥에 가득 박혔던 못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못이 다 빠진 기둥을 한참 바라보던 아들은 “엄마, 기둥의 못은 다 빠졌지만, 기둥에 남겨진 저 못 자국을 볼 때마다 제 잘못이 기억날 텐데 저 못 자국을 어떻게 지울 수 있겠어요”라며 울먹였다. 못 자국은 바로 ‘몹쓸 아이’라는 나쁜 꼬리표였다. 꼬리표는 부모가 자녀에게 붙여주기도 하고, 선생님이 학생에게 붙여주기도 한다. 친구끼리는 즐겨 부르는 별명이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꼬리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잊히기도 하지만, 죽은 후까지 남게 되기도 한다.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한 여인을 율법학자들이 예수에게로 데려와 물었다. “율법에는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돼 있는데 당신(예수)의 생각에는 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예수의 대답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였다. 이 한 마디에 돌을 들어 여인을 치려던 자들은 모두 돌을 땅에 내려놓고 돌아갔다. 예수의 이 한 마디는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냉대를 받으며 평생을 달고 살아갈 ‘간음한 여인’이라는 나쁜 꼬리표를 떼준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남을 평가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때문에 남에게 꼬리표를 다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꼬리표 붙는 것을 싫어하면서 말이다. 현명한 엄마 덕분에 잘못을 깨달은 아들마저도 ‘몹쓸 아이’라는 꼬리표는 스스로 떼지 못했다. 결국 꼬리표는 다른 사람들이 떼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쁜 꼬리표 떼주는 사람이 되자. 평생 달고 살 ‘간음한 여인’이라는 나쁜 꼬리표를 떼준 예수처럼.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누구나 단점이 있다. 서로를 정죄할 자격이 없기에 꼬리표 달지 말자. 그리고 서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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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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