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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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익산교육지원청 교육장/어라이즈교육연구소 대표

 

의사이자 음악가,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1952년 노벨평화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인류의 형제애’를 위해 노력한 공로가 수상의 영광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잠시 경유지인 프랑스 파리에 머물자 취재기자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사실 슈바이처 박사는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伯爵)’ 칭호를 받은 귀족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기자들은 슈바이처 박사가 당연히 특등실에 탔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다. 기자들이 특등실을 구석구석 살폈지만, 그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들은 일등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도 없었다. 다시 이등칸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마저도 그는 없었다.
 
슈바이처 박사를 찾지 못한 대부분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아직 삼등칸이 남아 있었지만, 기자들은 귀족 신분인 슈바이처 박사가 설마 가난한 사람들이나 타는 곳에 탔겠나 싶어 아예 삼등칸은 찾지도 않고 취재를 포기한 채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영국 기자 한 명은 행동이 달랐다.
 
기차에 남은 기자는 혹시나 하고 삼등칸을 살피기 시작했다.
 
역한 냄새로 가득한 삼등칸 구석에서 빈민들을 진찰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그렇게 찾아 헤매던 슈바이처 박사였다.
 
인터뷰를 시작한 기자의 첫 질문은 이랬다.
 
“선생님은 왜 3등 칸에 타셨습니까?”
 
“이 기차에는 4등 칸이 없어서요.”
 
슈바이처 박사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박사님 같은 분이 왜 특등실에 계시지 않고 이렇게 불편한 곳에 계십니까?”
 
“저는 편안한 자리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이 필요한 자리를 찾아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지체 없이 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는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그의 삶 중 가장 중요한 3가지를 포기해야만 했다.
 
심취했던 바흐 음악과 명성을 떨칠 대학 교수직, 그리고 풍요롭고 안락한 자신의 삶이었다.
 
그는 아프리카에 병원을 설립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병을 고쳐주고, 신학자로서 그들의 영적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했다.
 
슈바이처 박사는 자신의 안일한 삶보다는 어려운 이웃과 기꺼이 함께하는 삶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 여겼다.
 
이러한 자신의 삶의 철학을 고집스럽게 실천한 그는 영원한 ‘아프리카의 성자’로 남았다.
 
“저는 편안한 자리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이 필요한 자리를 찾아다닙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슈바이처 박사의 이 말은 모든 이들을 감동시키는 명언으로 자리 잡았다.
 
자신의 높은 신분을 과감히 내려놓고, 낮은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준 슈바이처 박사처럼 편안함보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그런 삶을 모두가 꿈꾼다면 세상은 얼마나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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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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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춘

이현환교육장님 아름다운글 잘보고갑니다
고맙습니다
우창수기자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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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자리보다 도움이 필요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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