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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칼럼]청소년 인권교육이 무색한 현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가지는 기본 권리다. 즉, 천부인권(天賦人權)이다. 또 피부색이나 직업, 성별, 신체적 특징 등에 따라 부당하게 대우받거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일선 초‧중‧고등학교에선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존중 등에 관한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우리 사회는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금지하고 있다. 대신 여성문제, 노동문제, 빈곤문제, 소수민족문제, 장애인문제, 국제난민문제, 환경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인권존중의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노력이 있음에도 법무부 차관이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 초기 정착 지원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는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10분이 넘는 브리핑 시간 내내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차관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 직원의 사진이 문제가 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지금이 조선시대냐’, ‘갑질이다’, ‘대통령도 자기 우산은 자기가 든다’라는 등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취재한 많은 언론들은 “황제의전”이라고 비판했고, 기사 내용과 사진을 본 독자들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행태라고 분개했다. 또 다른 독자는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우산을 들고 차량으로 이동했다며 차관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런 비판 속에 결국 차관은 “엄숙하고 효율적인 브리핑이 이루어지도록 저희 직원이 몸을 사리지 않고 진력을 다하는 그 숨은 노력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국민 여러분께 고개를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 자신부터 제 주위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받도록 거듭나겠다”고 했다. 누리꾼들은 우산을 직접 들고 행사에 참석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의 사진과 함께 비판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자신의 구두를 직접 닦았다고 한다. 이를 만류하는 비서관에게 “자신의 구두를 닦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라며 “세상에 천한 일이란 없네. 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국제 연합(UN)은 '세계 인권 선언'을 선포(1948년)하면서 ‘인권’을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권리로 채택했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고 정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함을 세계 인권 선언은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는 말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함을 뜻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를 기대하며, 청소년들에게 인권존중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권교육에 반하는 사회 현상들을 접할 때면 민주시민으로서의 가치관을 확립시키려는 학교에서의 청소년 인권교육이 무색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황제 우산’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의 의견들도 있다. 하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회 지도층의 사람들은 국민들로부터 비난 받지 않는 공정사회를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는 모범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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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8-30
  • [이현환 칼럼]삼인성호(三人成虎)』 격(格) 『네거티브(Negative)』 안 돼
    위(魏)나라의 대신 방공(龐恭)이 태자와 함께 조(趙)나라에 인질로 끌려갈 때의 이야기다. 방공이 왕에게 물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두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왕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세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또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라고 왕이 대답했다. 그러자 방공이 말했다.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도, 여러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 이 대화는 ‘세 사람이 호랑이를 만들어낸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유래다.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예나 지금이나 선거에 임하는 사람들은 『네거티브(Negative)』 전략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네거티브는 좌우 명암 관계가 피사체와 반대인 사진의 화상을 뜻한다. 그러나 선거전(選擧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네거티브는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폭로하여 자신이 이득을 얻는 것을 말한다.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질 수 있는 것도, 우선은 상대방의 비리라 규정짓고 공격하는 것이다. 일부 후보자들의 이런 행태는 과거 선거에 임했던 자들의 네거티브 전략이 나름 효과가 있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인성호(三人成虎)』처럼 결국에는 거짓으로 밝혀질 것도 여러 번 듣게 되면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는 ‘페어플레이(fair play)가 없는 스포츠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투철한 정신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드라마틱한 미담이 되고 있다. 결승에서 아쉬운 패배를 했음에도 승자의 손을 들어주며 축하해 주고, 펜싱경기에서 공격을 시도하다 다리를 삐끗한 선수를 향해 공격을 멈추고 장비를 재정비하게 해준 우리 선수들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체육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선거에 임하는 후보자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아니겠는가 싶다. 네거티브 전략으로 승부를 가리려 하기보다는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정해진 법대로 정정당당한 승리를 이끌어 내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필요하다.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미래 사회의 주역인 우리 청소년들에게 모범으로 보여줘야 할 선거문화를 정착하자. 네거티브로 서로 물고 뜯어보았자 결국은 둘 다 멸망하는 길로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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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8-12
  • [이현환 칼럼]자녀교육, 『틀림이 아닌 다름』 인정해야
    8살 난 이샨은 상상력이 남 다른 아이다. 수업시간에 배우는 글자들이 물고기 되어 헤엄치고, 알파벳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상상을 하는 게 일상이다. 이런 엉뚱한 생각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선생님들로부터는 모든 일에 가능성이 없는 아이로 취급당했다. 아버지 역시 무엇에든 1등하는 형과 비교하며, 엉뚱한 행동을 하는 이샨을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꾸짖기만 했다. 그러다가 이샨의 엉뚱한 행동을 고쳐보려고 규율이 엄격한 기숙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하지만, 여기서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특이한 행동 때문에 선생님들에게서 꾸중을 당하고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학교에 니쿰브 선생님이 미술 교사로 부임했다. 니쿰브 선생님은 이샨의 행동을 관찰하다가 다른 선생님들은 물론 그의 부모도 발견하지 못한 난독증이 이샨에게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다른 선생님들이 문제아로 취급했던 이샨에게서 그림그리기와 만들기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도 발견했다. 니쿰브 선생님은 이샨의 이런 장애를 가능성으로 바꾸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기 위해 열정을 다했다. 엉뚱하다 여겨지는 이샨의 상상력을 구속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격려하며 도왔다. 소외당하는 한 아이에 대한 니쿰브 선생님의 관심과 노력은 이샨으로 하여금 예전보다 훨씬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갖게 했다. 난독증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글도 잘 읽을 수 있게 됐고, 타고난 소질을 살려 교내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1등도 했다. 이샨의 아버지는 니쿰브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이샨에 대한 자신의 교육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샨의 이야기는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와 부모의 역할(교육방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우는 인도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아이들의 개성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말해 주고 있다. 니쿰브 선생님의 교육적 마인드를 통해 아이들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데는 선생님들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엉뚱하다는 이유로 무시한 적은 없었는가. 모가 난 돌은 모가 나서 쓸모가 있고, 둥근 돌은 둥글어서 쓸모가 있다. 아이들의 자그마한 일탈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다」는 생각으로 아이의 특별함을 존중해야 한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니쿰브 선생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이의 장점을 살려 당당한 걸음으로 미래의 삶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교사이고 부모여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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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7-26
  • [이현환 칼럼]준법(遵法), 민주시민의 길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解放)된 날이다. 그로부터 3년 후 1948년 총선거를 실시해 초대 국회의원을 뽑았다. 여기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헌법(憲法)을 만들고, 자주독립(自主獨立)의 민주국가(民主國家)임을 세계만방에 공포(公布)했다. 이를 기념(記念)하는 날이 바로 ‘제헌절(制憲節)’이다. 한 초등학교에선 학급별로 제헌절 계기(契機)교육을 실시했다. 제헌절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고 학교 규칙으로부터 시작하여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교육에 참여한 한 아이는 “법(法)은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헌법(憲法)은 국가의 기본 법칙이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정치 조직 구성과 정치 작용 원칙을 세우며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거나 형성하는 최고의 규범이다. 필자의 초등학교 『학교생활통지표』 ‘행동발달상황’란에는 ‘준법성(遵法性)’을 비롯한 15개 항목이 있었다. ‘준법정신(遵法精神)’은 법을 지켜나가는 정신이다. 그러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준법성을 고양(高揚)시키려는 교육적 의도(意圖)였다. 사회의 모든 법과 규범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과 사회 정의를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때문에 공공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법과 질서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럼에도 꼭 지켜져야 할 법을 어긴 사람들이 훗날엔 사실로 밝혀질 자신의 범법(犯法) 행위를 인정하기보다는 우선 당장 모면해 보려는 생각에서 자기 합리화(合理化)에 급급해 하는 모습은 청소년들이 실천하려는 준법정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 국가와 국민이 민주국가로 발전하고,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른이나 아이를 막론하고 준법교육(遵法敎育)이 필요하다. 올해로 일흔 세 번째 제헌절을 맞으면서 우리의 청소년(靑少年)들이 준법성(遵法性)이 강한 건강한 민주시민(民主市民)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旣成世代)들은 법(法) 준수(遵守) 모범(模範)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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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7-17
  • [이현환 칼럼]노인(老人), 『지혜(智慧)의 보고(寶庫)』로 존중해야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 중에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것들이 많다. 그 중에 젊은이들이 노인을 폭행하거나 욕설하는 장면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부모가 도대체 어떻게 가르쳤기에 저러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전철 안에서 중학생들이 노인을 폭행하고, 노약자석에서 어른에게 대드는 장면은 모두를 경악시켰다. 남학생에게 팔꿈치로 맞고, 목이 졸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노인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바른 자세로 앉으라”는 충고를 던졌다가 세상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봉변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이 중학생들에게 노인복지법 위반 혐의(노인학대죄)를 적용해 법원 소년부로 송치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쪽에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라는 뜻으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했는데 어쩌다 요지경이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2006년 국제연합(UN)이 ‘세계 노인 학대 인식의 날’을 제정한 걸 보면 노인 학대에 대한 심각성은 우리나라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의 노인 학대 증가 원인을 급속한 고령화 현상, 노인 인구의 증가,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부양기능이 약화에서 찾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사회구조가 어떻게 변하든 그것이 노인 학대의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노인들은 존경받을 분들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노인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된 우리나라가 6.25전쟁으로 폐허된 자리에서 보릿고개의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새마을 운동을 통해 오늘의 부강한 대한민국을 일궈낸 주역들이다. 뿐만 아니라 지식(知識)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하는 『지혜(智慧)의 보고(寶庫)』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도서관(圖書館)이 배움과 정보를 얻는 지식의 창고라면, 노인들은 그분들의 삶 속에 녹아난 지혜와 경륜을 지니고 있는 보고(寶庫)라는 의미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똑같이 생긴 말 두 마리를 두고 어미 말과 새끼 말을 구별하는 방법, 네모난 나무토막의 위와 아래를 가려내는 방법, 재로 새끼를 꼬는 방법 등의 답을 노부모로부터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재가 경륜을 이기지 못하고 경륜이 연륜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나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는 그리스 격언이 생각나는 이야기다. 가정은 물론 국가나 사회는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배우고 활용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다는 격언이 아닐까. 어른(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이 잔소리로 들리는 세상이 되었지만,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노인이 될 청소년들에게 조언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 경험을 노인들의 지혜에서 배우고, 노인들을 내 삶을 윤택케 해 줄 『지혜(智慧)의 보고(寶庫)』로 존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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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7-09
  • [이현환 칼럼]자녀에게 관람(觀覽) 예절 가르쳐야
    지난 3월 국내 한 전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철없는 20대 남녀가 유명 그래피티(graffiti) 작가의 벽화에 낙서해 작품을 망친 황당한 사건이다. 전시 기획사는 경찰에 이들 남녀를 신고했다가 나중에 취하했다. 이들 남녀가 “벽에 낙서가 돼 있고, 붓과 페인트가 있다 보니 낙서를 해도 되는 줄 알았다”고 한 말을 믿고 작품 훼손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판단으로 신고를 취소한 것이다. 지난 5월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국 거장 화백이 그린 억대의 예술작품을 어린 아이들이 훼손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 화백은 너그럽게도 “아무 문제도 삼지 말라”며 용서했다. 이 사건의 과정은 이러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작품 전시관에 들어온 두 아이는 작품이 신기한 듯 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작품을 밟고 올라서는 것은 물론 그 위에 눕기까지 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행동은 가관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을 말리기보다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 옆에는 ‘눈으로만 감상해주세요’라는 주의 문구가 적혀있었고, ‘어린이가 올바른 관람을 할 수 있게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라는 안내문도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이들 부자의 눈엔 이 문구가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이들 부자의 무도한 행동에 작품은 심하게 훼손됐다. 미술관은 화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화백은 화내기는커녕 “아무 문제도 삼지 말라”며 미술관을 다독였다. 그러면서 화백은 “애들이 뭘 압니까, 어른이 조심해야지. 그래서 더 이상 얘기할 것 없다”며 “나도 자녀와 손자들이 있기에 용서하고 싶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30~40년 전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 다오’라는 CF 광고가 있었다. 개구쟁이는 사전적 의미로 ‘철없이 짓궂은 장난을 즐기는 아이‘를 뜻한다. 장난이나 말썽을 피우는 것이 용납되는 아이를 일컫는 애칭(?)이기도 하다. 철없는 아이들의 조그만 잘못을 덮어주고 용인해 주는 어른들의 넓은 아량이 개구쟁이라는 단어에 녹아 있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좋든, 나쁘든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의 일탈(逸脫)된 행동을 “그냥 둬~, 아이니까 그러지~”라고 면죄부를 주면 이 아이는 남을 배려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피해를 주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혼신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훼손했음에도 너그러이 용서한 기획사와 화백의 아량은 좋은 미덕임에 분명하다. 철없는 아이들의 행동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부추기듯 사진까지 찍는 아버지의 행동은 문제가 있다. 아이들의 행동을 만류하거나 바른 감상태도를 교육하기는커녕 그 모습을 사진 찍어주며 즐기고, “아이들이 작품을 만지면 안 되는지 몰랐던 것 같다“고 변명하는 아버지는 되지 말아야지 않겠는가.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등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에티켓을 아이에게 교육해야 할 책임은 부모와 어른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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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1-07-05

실시간 오늘마당 기사

  • [자유기고]차(茶)담으로 소통의 꽃 피운다!
    우리는 사회의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인다. 경쟁사회가 형성되면서 사회구성원들이나 가정에서도 대화가 줄어들고 있다. 개인 활동이 일상생활로 변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교육의 현장이 온라인화 되고 가족 단위로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순응하면서 다담(茶談)으로 이야기 꽃을 피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옥구향교 전통성년례 자문위원과 성규관 전학, 한얼문예박물관 학예교육사로 활동하는 필자는 ‘인성교육의 현장은 고현의 차이가 없다’는 생각으로 교육에 임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말 한마디에 상처를 주고 구성원들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다담은 이러한 관계 개선을 위해 기여하는 바가 크다. 일상생활에서 우정과 신뢰를 형성하여 건강한 사회로 이끌며, 삶의 행복과 활력소를 주며 소통과 공감하는 장을 제공해준다. 차를 마시면 몸 안에 스며든 삿된 기운을 몰아내고 치병 효과와 머리를 맑게 하고 사색 공간을 넓혀주어 배려와 존중하는 미덕을 실천할 수 있고 건강한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차를 우리는 동안 오고 가는 대화에서 마음에 응어리를 풀어주고 차를 따르는 절도 있고 절제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예의범절을 배우게 되어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대화의 장이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삶의 현장이 얽혀서 돌아가고 있다. 삶은 흐르는 물과 같고 즐거움은 멀리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정은 변하기 쉬우니, 세상살이 험난하고 고생스럽고 순탄치 못할 때는 한 발짝 물러서서 세상을 넓게 보고 포용하며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를 만끽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오늘마당
    • 자유 산책
    2020-11-30
  • [이현환 칼럼]공감적 대화, 경청으로부터
    더위가 기승을 부린 한여름날, 기관 특강을 위해 강사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직원이 가까이와 말을 건넸다. “무슨 차를 드릴까요?” “커피만 아니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직원이 가져온 차는 커피였다. “커피가 아니라고 했는데요”라고 말하려다 직원이 미안해 할까봐 그냥 받아 마셨다. 그러면서 내가 말을 잘못했나 싶어 몇 번이고 되뇌어 보았다. 차를 주문받는 직원은 ‘손님이 무슨 차를 주문할까’라는 생각에 “커피”라는 말만 기억했던 것 같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자기가 듣고자 하는 부분만을 듣게 되면 오해가 생긴다. 칭기즈칸은 “배운 게 없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며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 지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대화의 기본은 경청이다. 경청의 구체적인 방법은 상대방의 말을 온몸으로 듣는 것이다. 등교하려고 집을 나서는 아이가 “엄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어떤 엄마는 주방에서 설거지하며 “응, 알았어, 잘 다녀와~”라고 별생각 없이 대답한다. 이런 성의 없는 엄마의 대답은 아이로 하여금 입으로만 하는 형식적인 인사를 하게 만든다. 다른 엄마는 인사하는 아이를 현관문까지 배웅하면서 아이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안아준다. 그리고 “학교 잘 다녀와~”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이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온몸에 안고 행복한 마음으로 등교하게 된다. 엄마가 온몸으로 아이의 인사를 받고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다. “말하기는 한 번 하고 듣기는 두 번 하고 공감 표현은 세 번 하라”는 말이 있다. 이는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고 공감해 주라는 의미다. “커피만 아니면 됩니다”는 말을 끝까지 듣는 경청이 있었다면 커피를 가져다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공감은 너(you)와 나(me)가 만드는 우리(we)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영역이다. 이 영역의 크기에 따라 공감 능력의 차가 생긴다. 공감 영역이 클수록 오해와 불신은 적어지고 이해와 나눔과 함께함은 커지게 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에 대해 공감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공감 영역을 크게 하는 공감적 대화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경청에서 출발한다는데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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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0-11-27
  • [이현환 칼럼]나쁜 꼬리표 떼주는 사람 되자
    혼자서 힘들게 살아가는 엄마에게 행실이 바르지 못한 아들이 있었다. 이런 아들은 ‘몹쓸 아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이를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엄마는 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네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나쁜 평을 받는 행동했을 때 네 손으로 이 나무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도록 하자.” 아들은 엄마와의 약속에 따라 자신의 잘못이 있을 때마다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았다. 얼마 가지 않아 기둥에는 더 이상 못 박을 곳이 없게 됐다. 기둥에 가득 박힌 못을 본 아들은 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며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는 “네가 네 죄를 깨닫고 뉘우쳤다면 너는 그것으로 용서를 받은 것이다. 이제는 네가 착한 일을 할 때마다 저 기둥의 못을 한 개씩 빼도록 하자”고 다시 제안했다. 아들은 그날부터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고, 얼마지 않아 기둥에 가득 박혔던 못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못이 다 빠진 기둥을 한참 바라보던 아들은 “엄마, 기둥의 못은 다 빠졌지만, 기둥에 남겨진 저 못 자국을 볼 때마다 제 잘못이 기억날 텐데 저 못 자국을 어떻게 지울 수 있겠어요”라며 울먹였다. 못 자국은 바로 ‘몹쓸 아이’라는 나쁜 꼬리표였다. 꼬리표는 부모가 자녀에게 붙여주기도 하고, 선생님이 학생에게 붙여주기도 한다. 친구끼리는 즐겨 부르는 별명이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꼬리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잊히기도 하지만, 죽은 후까지 남게 되기도 한다.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한 여인을 율법학자들이 예수에게로 데려와 물었다. “율법에는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돼 있는데 당신(예수)의 생각에는 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예수의 대답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였다. 이 한 마디에 돌을 들어 여인을 치려던 자들은 모두 돌을 땅에 내려놓고 돌아갔다. 예수의 이 한 마디는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냉대를 받으며 평생을 달고 살아갈 ‘간음한 여인’이라는 나쁜 꼬리표를 떼준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남을 평가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때문에 남에게 꼬리표를 다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꼬리표 붙는 것을 싫어하면서 말이다. 현명한 엄마 덕분에 잘못을 깨달은 아들마저도 ‘몹쓸 아이’라는 꼬리표는 스스로 떼지 못했다. 결국 꼬리표는 다른 사람들이 떼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쁜 꼬리표 떼주는 사람이 되자. 평생 달고 살 ‘간음한 여인’이라는 나쁜 꼬리표를 떼준 예수처럼.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누구나 단점이 있다. 서로를 정죄할 자격이 없기에 꼬리표 달지 말자. 그리고 서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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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2
  • [이현환 칼럼]죽음 부르는 『악(惡)플』, 이제 그만
    어느 학교폭력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으면서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생각이 든 적 있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중 어느 한 쪽의 학생이 자살할 수도 있겠구나’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댓글의 내용은 너무 악의적이었다. 갖은 욕설과 저주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악(惡)플(악성댓글)』이 난무했다. 과연 악플을 단 사람들은 가해학생이나 피해학생을 정죄할 정도로 깨끗하고 바른 사람들일까? 또 그들이 악플을 받는 당사자라면 수많은 악플을 감당할 자신이나 있을까? 지난달 한 여대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악플을 단 인터넷 이용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단 한 장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이 여대생은 사망하기 전에 여러 차례 자신의 힘든 심경을 토로하는 글을 익명으로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런데 누리꾼들은 여대생의 심경을 이해하고 위로하기 보다는 “그냥 어서 조용히 죽어”, “말로만 죽는다 말고 그냥 좀 죽어” 등의 수많은 악플을 달았다. 결국 이 악플들은 여대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됐다. 댓글은 게시물 아래 남기는 짧은 글이다. 댓글은 주로 논리적인 반박 글이나 동의하는 글보다는 짧은 감상평 위주로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자기편이 아니거나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온갖 비난과 욕설 등 악플 다는 것을 당연시 한다. 악플은 주로 신문기사에 많이 달린다. 그 내용의 대부분이 자기 의견과 같으면 한없이 관대한 댓글을 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저주가 난무하는 악플로 일관한다. 악플은 익명성이라는 점을 악용해 상대방에게 모욕감이나 치욕감을 주는 폭력이요, 인격 살인이요, 범죄다.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연예인들 중에는 악플에 시달리다가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으로 활동을 중단하는가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많지 않은가. 이제는 악플의 반대인 『선(善)플』을 생활화했으면 한다. 착한 댓글 선플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또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칭찬 댓글은 더 많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힘을 주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밝게 만든다. 비판 댓글도 맹목적인 비난이 아닌 올바른 단어 사용과 정당성을 겸비한 비판이면 선플이 될 수 있다. 악플로 인해 상처받고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특히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우려가 있는 악플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청소년들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성장해야 할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악플을 배격해야 한다. 그리고 선플 달기를 생활화해야 한다. 선플은 받는 사람, 보는 사람, 쓰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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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9
  • [칼럼]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 우리 안에 있다
    몽골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은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다”고 했다. 덴마크의 선각자들은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며 국민들을 하나로 모아 오늘의 덴마크를 건설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를 망치는 요인을 밖에서 찾는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백제는 660년의 찬란한 문화강국이었다. 하지만 왕이 초심을 잃고 충신들의 간언을 외면한 채 정사를 그르쳤기 때문에 멸망했다. 당나라와 맞설만한 강대한 국력을 가졌던 고구려는 권력투쟁으로 조정이 분열되는 실정(失政) 때문에 668년의 역사가 끝이 났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통일신라를 이룩했다. 그럼에도 지배세력의 부패와 함께 민심의 이반으로 역사의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후 정치적·이념적 갈등이 국민 분열을 가져왔다. 이를 틈탄 북한이 남침을 강행함으로써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수많은 희생자와 폐허된 국토를 남겼다. 우리 국민은 1997년 외환위기를 금 모으기를 통해 극복함으로써 세계 일등 국민이라고 칭찬받은 위대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여러 분쟁을 목도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과 시청 앞 광장에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모여 이념과 주장으로 편 가르기하고 있는 실상이 바로 그거다. 이는 우리 사회에 수많은 이익집단이 제각기 분배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직시해야 할 사실이 있다. 국민화합과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국민 간의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우리 내부의 적(문제)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말이다. 과거 우리 국가를 이뤄왔던 삼국이 부정과 부패, 분열 조장, 국민 갈등 등으로 폐망했던 사실을 교훈 삼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내부의 적인 갈등과 분쟁을 넘어 국가의 지도자들로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국민화합을 이끌어내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세계가 인정한 일등 국민답게, COVID-19를 극복해내는 모범 국가답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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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9
  • [칼럼]다수결 명분으로 『내합남불』안된다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전원 찬성, 전원 반대, 전원 기권 등의 전원 일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전원 일치 의사결정의 차선책으로 다수결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의사결정 수단으로 평가받는 원리이기도 하다. 다수결 원리는 소수의 판단보다는 다수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조금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 뿐 어느 한 쪽 구성원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절대적 지배나 독재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소수 의견에 양보하지 않고 자기들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경우 다수에 의해 소수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다수결 원리는 공정한 게임 규칙과 다수와 소수 사이의 신뢰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 되어 있을 때 성립한다. 의사 결정 이전에 충분한 대화와 타협, 토론을 통해 소수 구성원들이 다수의 결정에 따를 만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 자기가 소수에 속하였을 때 주장했던 상황이 자신의 위치가 다수로 바뀌면 그 주장이 반대로 달라지는 경우를 본다. 사안에 대하여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자신이 유리한 쪽을 택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남이 타협을 하면 야합이고 내가 타협하는 것은 양보라고 한다. 남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면 줏대가 없고 내가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포용이라고 한다. 똑같은 상황임에도 자기중심의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처럼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수를 배제시키는 다수의 횡포를 볼 때면 『내합남불(내가 하면 합법, 남이 하면 불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는 자기를 합리화하기에 급급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내로남불』과 같은 의미를 갖는 말이다. 이런 사람이 어디 한 두 사람이겠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사회리더)에 속한 사람들은 유불리에 따라 달리하는 자신의 언행 불일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합남불』, 『내로남불』식 자기 합리화나 말 바꾸기보다는 상대방(특히 소수)의 의견을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서 국가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우리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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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1
  • [칼럼]백성을 사랑한 세종대왕의 리더십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이는 어느 집단에서나 리더가 없으면 구성원간의 의견대립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마침내는 집단이 추구하는 목표지향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의미다. 리더가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리더십이라 하는데 미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콜먼은 리더십의 유형을 6가지로 구분한다. 하지만 리더십 연구가들은 집단의 공동목표 달성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는 리더십의 종류는 리더십을 시도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다면서 "어느 유형의 리더십이 더 좋거나, 더 나쁜 리더십은 없다"고 한다. 리더십에 대해서 예수는 “이웃사랑”을 말하고, 공자는 “용서(恕)”를 말하고, 석가는 “자신의 마음대로 남을 헤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선현들의 말은 리더십이 곧 인간관계라는 말로 이해된다. 인터넷을 통해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을 근거로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문답형식으로 구성한 '왕과의 인터뷰'라는 영상을 보고 국가사회의 리더들이 공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한다. “왕께서 즉위하실 때에 가장 처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의논하자였다. 내가 인물을 잘 모르니 신하들과 의논하여 관리를 임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신하들을 파트너로 삼고 모든 국정을 신하들과 의논해서 운영하겠다는 '섬김의 리더십'이다. “왜 왕께서 (관직을)직접 임명하지 않으십니까?” “관직이란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데려다 앉히는 것이 아니라, 그 임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해 임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정적이고, 나에게 불경한 신하일지라도 말이다.” 이는 학연, 지연, 혈연에 얽매이지 않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임명하겠다는 것이다. “개혁을 단행할 때 먼저 고려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벼슬아치에서부터 민가의 가난하고 비천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가부를 묻는 일이다. 만약 백성이 좋지 않다고 하면 행할 수 없다.” 이는 백성을 하늘같이 여기고 백성의 뜻을 받드는 세종대왕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백성은 왕께서 하시는 일을 모두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백성이 나를 비판한 내용이 옳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니 처벌해서는 안 되는 것이요. 설령 오해와 그릇된 마음으로 나를 비판했다고 해도 그런 마음을 아예 품지 않도록 만들지 못한 내 책임이 있는 것이니 어이 백성을 탓하겠는가.” 이는 구성원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질책의 화살을 한 몸에 받아야하는 리더의 역할을 말해 주고 있다. “왕께서 꿈꾸시는 태평성대는 어떤 것입니까?” “백성이 하려고 하는 일을 원만하게 하는 세상이다.” “오늘날의 (전하의)일을 가사로 지어 노래하게 해야 합니다.” “당대의 일을 찬양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뒷세상에서 평가하여 그 때 노래하게 하자.” 세종대왕은 자신의 권력유지만을 우선 생각하고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려는 왕들과는 달리 오로지 백성을 아끼는 마음으로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고자 했던 성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에는 애민사상(愛民思想), 위민사상(爲民思想), 여민동락(與民同樂) 등의 숙어가 붙는다. 모두 애민이란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은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통하지 않으니...”라고 시작하는 ‘훈민정음 예의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과 리더십을 통해 국가사회의 리더들이 배워야 할 게 있다. 국민과 구성원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곧 나라가 잘 되어지는 근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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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0-10-15
  • [칼럼]한글의 우수성에 걸 맞는 바른 언어 사용해야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지금으로부터 574년 전인 1446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와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기념일이다. 훈민정음 반포 당시 우리말은 있으나 글자가 없어 중국 한자를 써야 했다. 백성들은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말하고 싶은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세종대왕은 모든 백성이 쉽게 깨우쳐 쓰기 편하게 하기 위해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어 반포했다. 우리나라 고유 글자인 한글이 세상에 공개돼 상용화가 시작된 순간이다. 이 지구상에는 6,900여종의 언어가 존재한다. 우리 한글은 글자 자체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미국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지(Robert Ramsey)도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세계의 알파벳'이라고까지 극찬했다. 이렇게 세계인이 인정하는 우수한 우리 한글은 요즘 여러 가지 신조어에 밀려 맞춤법이 파괴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받아쓰기 하며 어렵게 한글을 익혔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맞춤법을 공부하면서 한글의 높은 수준을 체득한 필자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언어의 파괴는 지구촌 시대, 다문화시대, 지식정보산업 시대의 도래로 SNS(Social Network Service)등에서 한글을 짧게 줄여 쓰는데서 찾아볼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이라 이해한다. 하지만 매스컴이나 인터넷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연이어 쓰거나 초성만 사용하여 쓰는 글자 등은 곧 우리말 파괴현상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의 신조어 사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양면성이 있기에 옳고 그름을 말하기 어렵다. 사용빈도를 잘 조절하고 우리말을 파괴하지 않도록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신조어도 분명 좋은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한글의 우수성에 걸 맞는 바른 언어사용이다. 우리말 우리글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SNS 등 온라인상에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비속어나 상대방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는 은어, 또 소리 나는 대로 적기와 우리말의 어법,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무시하거나 글자 수를 줄여 쓰는 축약어는 국적불명의 언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작년 한글날 문재인 대통령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일제강점기 한글을 지켜낸 독립 운동가들의 민족정신을 되새긴다. 일반 백성들의 소통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새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은 왕조시대가 아닌 민주주의 시대에도 본받아야 할 리더십이다"고 밝혔다. 기성세대보다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는 새로운 언어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소통한다. 새로운 언어를 모르면 문맹인으로 취급받을 정도다. 짧은 글로 빠르게 뜻이 전달되는 언어라면 마땅히 환영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말의 가치를 높인다는 의미에서는 다음의 언어들은 배척했으면 한다.비속어와 은어, 변형어, 축약어 등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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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8
  • [칼럼]인간의 회귀본능(回歸本能)이 고향을 그리워하게 한다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는 이들로 민족의 대이동을 이룬다. 하지만 금년 추석명절은 코로나19로 인해 고향 방문을 자제해야 할 때라서 고향 방문이 조심스런 형국을 맞게 되었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몇 주일 후에 바다로 내려가 4~5년 성장한 뒤 산란을 위해 자기가 태어난 고향 강으로 돌아오는 모천(母川) 회귀본능이 있다. 연어가 모천(고향)을 찾아가는 길은 바다에서부터 거친 물결을 가르며 수천 킬로미터를 거슬러 강까지 올라가야 하는 힘겹고 어려운 여정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고향은 연어의 모천과 같은 곳이다. 고향은 부모형제 일가친척들이 있는 곳이고 어린 시절 꿈을 키우며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명절이 되면 연어가 사력을 다해 자신의 고향인 모천에 이르듯 힘들고 피곤함을 감내하면서 먼 곳에 있는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 역시 고향 회귀본능이 있어 고향집을 그리워한다. 내가 자란 고향집은 조선 말 실학자이자 항일 독립투사였던 해학 이기 선생의 생가다. 초등학교 시절의 내 고향집 뒤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이곳은 철따라 저녁 무렵이 되면 잠자리들이 몰려와 잠드는 곳이요 호랑나비처럼 큰 나비들이 날아와 날개를 접고 쉬는 곳이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새들이 깃들어 쉬다가 날이 밝아올 때면 아름다운 소리로 새벽을 알려주는 곳이었다. 또 고향집 뒤뜰에 우뚝 선 커다란 감나무는 지금도 그대로 있는데 선풍기, 에어컨이 없던 그 옛날 무더운 여름날이면 밤낮없이 동네 어르신들이 부채를 들고 나와 감나무 그늘 아래서 정담을 나누며 피서(?)하는 곳이었다. 감나무에 대한 추억은 또 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새벽잠을 깨워 애향단(동네)별로 모여 체조를 하고 마을길을 청소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동네 아이들은 이른 아침에 우리 집 감나무 밑에 떨어진 감꽃을 주워 실에 꿰어 목걸이, 손목 팔지 등을 만들었고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이니 나중엔 실에 꿴 감꽃을 하나 둘 빼먹곤 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우리 집 대나무 숲 뒤로는 블록 담이 만들어지고 마을길이 넓혀지고 지붕과 부엌 개량 사업 등으로 농촌 주택 현대화 사업이 있었는데 지금도 고향을 생각하면 5,60년 전 그 추억이 생생하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개가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돌아가다”라는 말은 “다시 가다”의 뜻을 갖고 있다. “다시 가다”란 말은 이곳으로 왔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돌아가셨다”란 말은 곧 인간의 회귀본능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 시인 천상병은 그의 시 귀천(歸天)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중략)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말한다. 천주교 신자로 알려진 그는 소풍과 같은 현재의 삶을 떠나는 날 영원한 하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하다. 명절이면 고향을 찾아가는 인간의 회귀본능이 있는 것처럼 오늘의 삶을 마치는 날에 내가 돌아갈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이 내게 있음에 감사하며 명절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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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환 대표의 세상 돋보기
    2020-09-24
  • [칼럼]"엄마가 그랬어요" 핑계대는 아이, 어른에게 배운 건 아닐까
    다섯 살 난 손자를 애지중지하는 할아버지가 최근 자기 집에 있었던 일을 친구들에게 소개한 내용이다. 잠깐 바깥나들이를 하고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집안에 있는 손자의 장난감이 부서져 있는 것을 손자를 불렀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누가 장난감을 이렇게 부서뜨렸지?"라고 물었다. 손자는 자기는 아니라며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시금 할아버지가 범인을 찾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다급해진 손자는 "엄마가 그랬어요"라고 대답했다. "아니, 엄마가 네 장난감을 이렇게 부서뜨려 놓았다고? 네 엄마 오라고 해!"라는 할아버지의 호령에 잔뜩 겁먹은 손자가 엄마의 손을 끌고 할아버지 앞으로 왔다. 할아버지는 화난 기색으로 "엄마가 장난감을 이렇게 부서뜨렸다는데 정말 그랬느냐?"고 묻자, 엄마도 "제가 안 그랬는데요"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더 강한 어투로 "그럼 누가 장난감을 이렇게 부서뜨렸지?"라고 다그치자 손자가 엄마에게 주먹을 보이며 "엄마, 누가 그랬는지 가위바위보 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와 할아버지 눈치를 살피더니 그제야 바싹 무릎을 꿇고 울면서 "제가 그랬어요"’라고 고백하더라는 것이다. 함께 이야기를 듣던 할아버지 친구들은 "다섯 살 난 어린애가 참 영특하다", "어린애인데도 임기응변이 뛰어 나네", "어린아이가 어떻게 가위바위보 하자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라며 제각기 할아버지 손자를 호평(?)했다. 아마도 이 아이에게는 자기 나름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문제를 잘 해 결해 준 든든한 엄마가 이 문제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천진난만한 다섯 살 아이가 누구로부터 '엄마 탓(남의 탓)'하는 법을 배웠을까? 고 김수환 추기경은 1990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의 골을 메우려면 자신부터 반성해야 한다"며 ‘내 탓이오’운동을 시작했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성경적 메시지였다. 역사상 가장 넓은 몽골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은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고 고백했다. 남 탓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문제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음에도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면 면책이 되거나 처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주변에서나 매스컴을 통해서 자기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나 집단이 자기를 보호해 줄 배경(background)이라 믿고 자기주장을 합리화하며 떳떳하다 주장하는 사람들도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엄마가 그랬어요"라고 핑계대며 엄마를 자기 보호의 배경으로 삼는 아이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책임을 회피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지금 당장은 쉬운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천진난만한 다섯 살 난 아이가 자기의 잘못을 엄마의 잘못으로 돌리려 했던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기를 잘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배운 건 아닌지말이다. 그렇다. 성인은 자라나는 청소년의 거울이다. 그래서 어른들의 행동이 매우 중요하다. 남을 탓하기보다 "내 탓이오"라 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말을 교훈 삼아 이를 실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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